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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탐구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by filebox77 2025. 2. 16.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1. 오이디푸스 왕과 ‘운명’ – 피할 수 없는 예언의 그림자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고대 그리스 비극 중에서도 ‘운명(fate)’이라는 주제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운명과, 그 운명에 맞서 싸우려는 인간의 의지가 빚어내는 비극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오이디푸스는 태어날 때부터 끔찍한 예언을 받았습니다. 바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다”라는 무서운 신탁입니다. 이 신탁은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니라, 그의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그림자가 됩니다. 오이디푸스의 부모인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는 이 예언을 피하기 위해 막 태어난 아기를 키타이론 산에 버리지만, 운명의 실타래는 그들의 뜻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아이는 코린토스의 왕 폴리보스에게 발견되어 왕자로 자라게 됩니다.

성인이 된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통해 자신의 끔찍한 운명을 알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부모라 믿었던 폴리보스 왕과 멀어지기 위해 고향을 떠나지만, 이 도피는 오히려 비극의 시작이 됩니다. 도중에 그는 한 노인을 만나 다툼 끝에 죽입니다. 그러나 이 노인이 자신의 친부인 라이오스 왕이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후 오이디푸스는 테베에 도착해 괴물 스핑크스(Sphinx)의 수수께끼를 풀고, 그 공로로 테베의 왕이 되어 이오카스테(Iocaste)와 결혼합니다. 그는 자신이 운명을 피했다고 믿었으나, 소포클레스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신탁을 완성하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에서 ‘운명’은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힘으로 그려집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자유 의지(free will)’로 고향을 떠났고, 스스로의 지혜와 용기로 스핑크스를 물리쳐 왕이 되었지만, 그 모든 행위는 결국 신탁을 실현시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오히려 그 선택이 운명을 완성해버렸습니다.

독자들은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 “운명은 과연 정해져 있는 것인가?”
  • “아니면 우리의 선택이 운명을 만드는가?”

소포클레스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지만, 오이디푸스의 삶을 통해 운명과 자유 의지의 복잡한 얽힘을 보여줍니다. 운명은 거부할 수 없는 힘이지만, 인간은 그 운명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신의 저주라기보다, 그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한 것입니다.

 

2. 인간의 의지와 선택 –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선택했는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단순히 운명에 휘둘리는 비극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will)와 선택(choice)이 운명을 어떻게 완성하는지를 심도 있게 보여줍니다.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는 이후의 사건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오이디푸스는 길 위에서 자신을 모욕한 노인과 충돌합니다. 그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다툼 끝에 노인을 죽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노인이 바로 자신의 친부 라이오스임을 알지 못합니다. 이 장면은 오이디푸스가 단순히 운명의 희생양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과 판단이 결국 비극을 초래했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급한 성격과 강한 자존심은 ‘선택’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며, 이 모든 결정이 결국 운명을 완성하는 과정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오이디푸스가 과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든 것인가, 아니면 신의 장난에 불과한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가 운명을 피하려는 과정이 오히려 운명을 완성해 가는 과정임을 보여주며,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아이러니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탁월하게 드러냅니다. 운명은 마치 거대한 거미줄처럼 인간의 의지와 선택을 감싸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갈 수 없는 숙명적인 틀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이 비극 속에서 소포클레스는 운명과 의지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결국, 운명과 의지는 상반된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며 비극적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피해 도망쳤지만, 그 도망침이 운명을 완성하는 길이 되었고, 진실을 밝히려는 그의 의지는 오히려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운명과 의지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인간의 삶을 형성한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인간의 선택이 단순한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철학적으로 탐구합니다.

이처럼 『오이디푸스 왕』은 단순한 신의 장난이나 숙명론적인 비극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필연성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모든 행동은 그의 성격, 가치관, 그리고 의지의 결과이며, 그 모든 것이 모여 결국 신탁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완성합니다. 소포클레스는 이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운명이란 단순히 정해진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만든 것인가?”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인간의 영원한 탐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비극적 아이러니 – 알고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고대 그리스 비극 중에서도 ‘비극적 아이러니(tragic irony)’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힙니다. ‘비극적 아이러니’란 관객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극 속의 인물은 그 사실을 모른 채 행동하며 결국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는 극적 기법을 말합니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처음부터 오이디푸스의 출생 비밀과 그의 죄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갑니다. 관객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점점 커지는 긴장과 함께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테베를 괴롭히는 저주의 근원일 리 없다고 확신하며, 오히려 테베를 구원할 영웅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는 과거에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도시를 구했으며, 백성들은 그를 지혜롭고 정의로운 왕으로 추앙합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테베의 구원자’라 믿었던 그 자리가, 사실은 테베에 ‘저주’를 가져온 비극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점점 자신의 파멸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러한 상황은 관객에게 강렬한 아이러니를 선사하며, 그의 운명이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점점 드러냅니다.

이 작품에서 비극적 아이러니는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세울수록 오히려 더 큰 파멸로 향하게 된다는 점에서 극대화됩니다. 그는 테베에 닥친 재앙의 원인을 찾기 위해 왕으로서 끝까지 책임지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재앙의 근원은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요컨대, 진실을 파헤치는 그의 의지는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칼날이 됩니다. 이 점에서 소포클레스는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거대한 운명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히 ‘운명 앞에 무력한 인간’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 점이 중요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운명을 직면합니다. 그는 테레시아스의 경고나 아내 이오카스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실을 밝히려 합니다. 결국 출생의 비밀과 부친 살해, 근친상간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는 그 고통에서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됨으로써, 이제야 비로소 진실을 보게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이 행위는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운명 앞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한 결과입니다.

4. 운명을 직면하는 용기 – 오이디푸스의 자기 인식과 비극적 위대함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단순히 운명에 굴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신탁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외면하거나,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직면하며, 그 대가를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자신의 두 눈을 찌르는 장면은 단순한 자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고통스러운 의지이며, 동시에 진실을 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벌입니다. 이 행위는 그가 단순한 희생자가 아닌,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는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신탁을 피해 도망쳤지만, 결국 그 운명을 실현한 것은 자신임을 인정하며, 자신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립니다. 이 장면은 독자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며, 인간의 존엄성과 책임 의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의 고통과 자기 인식을 통해 ‘비극적 위대함(tragic greatness)’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은 운명을 원망하거나 신에 대해 분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선택이 가져온 비극임을 인정합니다. 그는 테베 시민들에게 자신을 추방해 달라고 요청하며, 공동체에 미친 저주의 근원을 스스로 제거하려 합니다. 이 장면은 그가 단순히 운명의 희생자가 아닌, 끝까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지도자임을 보여줍니다.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운명 앞에 어떤 태도로 설 것인지는 온전히 인간의 몫임을 이 비극은 우리에게 강하게 일깨워 줍니다.

5. 『오이디푸스 왕』이 전하는 운명과 의지의 교훈 – 인간은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인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과, 그 운명 앞에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의지와 존엄성을 모두 담고 있는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운명에 굴복하는 한 인간의 비극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마주하고 받아들이는지가 삶을 얼마나 깊고 의미 있게 만드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그리스 신화 속 비극적인 한 인물의 이야기를 넘어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의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선택하는 순간순간이 모여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일까요? 삶이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시련과 고통을 던질 때, 우리는 그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소포클레스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단순히 운명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운명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의지를 통해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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