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냉혹한 현실과 가족애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고리오 영감의 희생과 파리 사회의 계층적 모순, 인간 본성의 허망함을 분석한다.
1. 고리오 영감의 희생: 무조건적인 부정(父情)의 비극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은 오노레 드 발자크의 방대한 작품군인 인간 희극(La Comédie Humaine) 중 하나로, 프랑스 파리의 빈민가인 보케르 하숙집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소설의 주인공 고리오 영감은 가난하지만, 딸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무한한 인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 국수 제조업으로 큰 부를 이루었지만, 두 딸인 아나스타지(Anastasie)와 델핀(Delphine)을 위해 모든 재산을 희생한다.
고리오 영감의 희생은 단순한 부모의 사랑을 넘어선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면서도 딸들에게 버림받는다. 그의 딸들은 아버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심지어 필요할 때만 그를 찾는다. 특히, 델핀은 아버지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하면서도 그를 부끄러워한다. 이처럼 고리오 영감의 부정(父情)은 극단적인 자기 희생으로 이어지며, 결국 그를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시킨다.
발자크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무조건적인 사랑이 때로는 희생자를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부모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자녀들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가족 관계 내에서의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폭로한다. 고리오 영감의 죽음은 단순히 한 노인의 비극을 넘어, 인간관계에서의 불균형과 희생의 의미를 독자에게 묻는 강렬한 메시지로 남는다.
2. 파리 사회의 잔혹한 계층 구조
『고리오 영감』은 단지 가족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발자크는 이 작품을 통해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계층적 모순과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소설의 주요 무대인 보케르 하숙집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사회다. 이곳에는 고리오 영감뿐만 아니라 젊은 법학도 외젠 드 라스타냐크(Eugène de Rastignac), 부도덕한 사업가 보트랭(Vautrin)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라스타냐크는 파리의 상류 사회에 진입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진 인물로, 고리오 영감의 딸 델핀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사다리를 오르려 한다. 반면, 보트랭은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려는 인물로, 라스타냐크에게 범죄의 길을 제시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행동은 파리 사회가 가진 부의 편중과 기회 불평등을 상징한다.
발자크는 보케르 하숙집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상류층의 화려함 이면에 감춰진 탐욕과 부패, 하층민의 절망과 무력감이 대조를 이루며, 작품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독자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통해 고리오 영감의 비극이 단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3. 인간 본성의 허망함: 이기심과 탐욕의 민낯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인간 본성의 허망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리오 영감의 딸들, 아나스타지와 델핀은 아버지의 사랑을 이용할 뿐 진정한 애정은 없다. 그들은 상류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갈망하며, 아버지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만 여긴다.
라스타냐크 역시 이러한 인간 본성의 시험대에 오른다. 그는 처음에는 순수하고 정의로운 청년이었으나, 파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경험하면서 점차 현실주의자가 되어 간다. 그는 상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타협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발자크가 인간이 환경에 따라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특히, 보트랭은 이기심과 탐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돈과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심지어 라스타냐크에게 범죄를 제안하기도 한다. 발자크는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을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도록 한다.
4. 고리오 영감의 죽음과 사회적 무관심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고리오 영감의 비극적인 죽음이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한 노인의 생의 끝이 아니라, 작품 전체에 걸쳐 이어져 온 가족애의 비극과 사회적 냉혹함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죽음의 순간에도 고리오 영감은 딸들에 대한 애절한 희망을 품고 있다. 그는 아나스타지와 델핀이 마지막 순간만큼은 자신을 찾아와 줄 것이라고 믿으며, 침대에서 힘겨운 호흡을 내쉰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기대와 사랑은 끝내 배신으로 돌아온다.
그가 침대에 누워 눈앞이 흐려지는 순간까지도 그는 딸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것은 차가운 고독뿐이었다. 그는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도 문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딸들의 발자국 소리를 상상한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의 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고리오 영감은 그렇게 무너진 희망 속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장례식은 그의 삶만큼이나 초라하고 쓸쓸하게 치러진다. 고리오 영감의 딸들은 끝내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적 체면과 사치스러운 일상에 더 집중하며, 아버지의 죽음을 외면한다. 이는 그들이 아버지의 부모애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심지어 그들은 장례 비용마저 라스타냐크에게 떠넘긴다. 발자크는 이러한 장면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관계조차 경제적 거래로 전락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결국, 고리오 영감의 비극적인 죽음은 자본주의 사회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는다.
5. 발자크의 현실주의적 시각과 작품의 현대적 의미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을 통해 현실주의적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는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현실을 가감 없이 묘사하며, 단순히 비극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발자크는 인물들의 내면과 사회적 배경을 통해 비극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낸다.
『고리오 영감』은 여전히 현대적 의미를 지닌다. 가족 간의 갈등, 부의 불평등, 사회적 무관심 등은 현대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들이다. 발자크의 작품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며, 우리에게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발자크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라스타냐크의 독백을 통해 현대 독자들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제 우리 둘뿐이다, 나와 너, 파리여!"라는 그의 외침은 사회에 맞서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경험한 사회적 냉혹함을 함축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사회적 부조리와 개인의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단지 한 노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같은 작품이다. 고리오 영감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위험성과 사회적 성공을 향한 야망의 대가를 깨닫게 된다. 그의 죽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사회적 책임과 인간다움의 가치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고전 문학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진실을 담고 있다. 이는 독자들에게 사랑과 희생, 사회와 인간의 본성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만들며, 시대를 초월한 문학적 가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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