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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탐구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by filebox77 2025. 3. 10.

1. 토머스 모어와 『유토피아』의 역사적 배경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는 르네상스 시대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철학자이며, 뛰어난 법률가였다. 그는 헨리 8세 치하에서 대법관을 지내며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결국 목숨을 잃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정치적 활동이 아니라, 그가 남긴 저서 『유토피아(Utopia)』였다.

『유토피아』는 1516년 라틴어로 출판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인문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으며, ‘ou-topos(어디에도 없는 곳)’와 ‘eu-topos(좋은 곳)’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즉, 이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를 뜻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이 책이 탄생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당시 유럽 사회의 변화와 영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5~16세기의 유럽은 대항해 시대와 르네상스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사회·경제적 변동이 극심했다. 영국 또한 중세 봉건제의 붕괴와 초기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형성이 맞물려 사회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 토지의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토머스 모어는 이러한 현실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그는 법률가로 활동하며 귀족과 지주들이 가난한 농민들을 착취하는 모습을 보았고, 정치가로서 부패한 정부의 무능함을 경험했다.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는 유명한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영국에서 진행된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운동은 지주들이 농경지를 가축 목초지로 전환하면서 소작농들이 강제로 쫓겨나는 현상을 의미했다.

토머스 모어는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인간 사회에서 정의로운 체제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가능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탐구하기 위해 그는 『유토피아』를 집필하게 되었다.

 

2. 『유토피아』의 주요 내용과 사회 구조

『유토피아』는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 제1부: 영국과 유럽 사회의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
  • 제2부: 이상적인 사회인 ‘유토피아’ 섬의 모습을 묘사

1부에서는 저자인 토머스 모어가 가상의 인물 ‘라파엘 히슬로데이(Raphael Hythloday)’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라파엘은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철학자이자 모험가로 등장하며,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특히 영국의 경제 구조가 불평등하며, 귀족과 성직자들이 부를 독점하는 반면, 농민과 노동자들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유토피아』는 당시 영국의 형벌 제도에도 비판을 가한다. 당시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도둑질을 하면 사형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매우 불합리한 처벌 방식이었다. 토머스 모어는 이러한 법 체계가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2부에서 등장하는 유토피아 섬은 현실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유토피아에서는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재화가 공동 소유된다. 즉, 특정한 개인이 재산을 독점할 수 없으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자원을 공유한다.

이곳에서는 하루 6시간 노동을 기본으로 하며, 남은 시간에는 학문이나 예술을 탐구할 수 있도록 보장된다. 노동은 강제되지 않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노동에 참여한다. 노동의 목적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복지를 위한 것이다.

또한, 유토피아에서는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중시하는 정책을 기본으로 한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다른 나라와의 충돌을 원하지 않으며, 최대한 외교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종교적 관용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사회가 운영된다.

국가 운영 방식 또한 현대 민주주의와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지도자는 국민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법률 또한 간단하고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유토피아에서는 복잡한 법이 필요하지 않으며, 국민 모두가 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 구조는 현실의 유럽 사회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유토피아』가 단순한 공상적 이야기가 아니라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유토피아』에 담긴 정치 철학과 현대적 의미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단순히 공상적인 이상 사회를 묘사하는 책이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철학적, 정치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는 ‘사유재산’이 인간 사회에서 불평등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사유재산이 없는 공동체적 사회가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체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 섬의 사회 구조를 통해 당시 유럽 사회의 현실과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럽의 귀족과 성직자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특권을 누리는 반면, 평범한 시민들은 가난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이러한 불평등은 사유재산과 계급 구조에서 비롯되었으며, 부를 가진 자들이 법과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빈곤층은 더욱더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유토피아 섬에서는 모든 재산이 공동 소유되며, 개인이 부를 독점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결과, 빈부격차가 발생하지 않고, 구성원들은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며 살아간다.

이는 후대의 여러 정치사상, 특히 19세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론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마르크스(Karl Marx)와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에서 사유재산의 철폐와 계급 없는 사회의 실현을 주장했으며, 이는 『유토피아』에서 묘사된 사회 구조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3-1. 『유토피아』와 사회주의 사상의 연관성

19세기에 등장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사상은, 산업혁명 이후 극심해진 빈부격차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에서 시작되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가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한 반면, 노동자 계급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착취당하며 살아야 했다. 이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며, 생산 수단의 사회적 공유와 계급 철폐를 주장하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이론을 제시했다.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강조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배하고, 공동체가 부를 공유하는 시스템"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라는 개념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또한, 유토피아에서 재산의 사적 소유를 금지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삶을 영위하는 사회 구조는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와 닮아 있다.

그러나 토머스 모어는 단순히 사유재산 철폐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철학적, 정치적 관점에서도 사회의 변화를 논의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그는 윤리적·도덕적 관점에서 공동체 중심의 사회가 인간에게 더 적합하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본성 자체가 탐욕적이지 않다면 사유재산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은 마르크스주의와 차이를 보이는데,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경제적 구조가 사회의 변화를 결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유토피아』는 현대 사회주의 사상의 원형이지만, 단순히 경제 체제의 변화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의 변화까지 고려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3-2. 『유토피아』가 현대 사회에 주는 의미

오늘날의 사회는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제시한 사회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경제 체제가 되었으며,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유토피아』가 제기한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현대 사회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다.

  • 복지국가의 등장
    『유토피아』에서 묘사된 사회는 현대 복지국가(Welfare State) 개념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현대 복지국가는 기본소득(Basic Income), 공공 의료 시스템, 교육의 평등 보장 등을 통해 사회 구성원 간의 불평등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북유럽 국가들(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유토피아』에서 제시한 공동체적 가치와 평등한 분배 시스템을 실현하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 기본소득과 노동시간 단축 논의
    『유토피아』에서는 하루 6시간 노동을 기본으로 하며, 남은 시간에는 학문이나 예술을 탐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이 꾸준히 논의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한, 기본소득 제도(Universal Basic Income, UBI) 논의는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생활비를 보장하는 제도로, 『유토피아』의 경제 구조와 유사한 개념을 갖고 있다.
  •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평등의 발전
    유토피아에서는 지도자가 주민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법률 또한 간단하고 명확하게 운영된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과 유사하며, 정치적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성평등, 인권 보호, 환경 보호 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는 유토피아적 이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3-3. 『유토피아』는 실현 가능한 이상인가?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제시한 사회는 5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실현되지 않았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를 기본 경제 체제로 유지하고 있으며,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유토피아』가 강조한 평등, 공동체 중심의 가치, 사유재산의 폐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유토피아』에서 제기된 문제들, 즉 "사유재산이 정말 필요한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사회는 가능할까?", "노동과 복지, 분배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완전한 유토피아적 사회는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토머스 모어가 던진 철학적 질문들은 현대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복지국가의 등장, 기본소득 논의, 노동시간 단축, 정치적 민주주의의 발전 등은 『유토피아』에서 제시된 이상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결국, 『유토피아』는 단순한 공상적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