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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탐구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by filebox77 2025. 2. 19.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인간의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돈키호테의 인물 분석, 풍자와 패러디, 기사도 정신과 현실, 산초 판사의 역할,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1. 돈키호테라는 인물: 이상주의적 광인인가, 시대를 앞선 몽상가인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한 늙은 귀족이 기사 문학에 심취하여 스스로를 방랑 기사로 착각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돈키호테는 낡은 갑옷을 걸치고, 초라한 말을 ‘로시난테’라 이름 붙이며, 시골 농부인 산초 판사를 종자로 삼아 모험을 떠난다. 그의 목표는 불의를 바로잡고,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를 위해 명예로운 기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며, 터무니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가장 유명한 장면인 ‘풍차와의 싸움’에서 그는 풍차를 거대한 괴물로 착각하고 돌진하지만, 결국 처참하게 쓰러진다. 이를 통해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미친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만, 그의 행동 속에는 현실에 대한 강한 저항과 이상을 향한 집착이 담겨 있다. 그는 단순한 광인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몽상가이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의 상징이다.

오늘날에도 돈키호테 같은 인물들은 존재한다. 사회적 관습과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신념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때때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돈키호테의 모험은 우리에게 이상과 현실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2. 풍자와 패러디: 기사 문학을 해체하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당시 유행하던 기사 문학을 풍자하고 해체했다. 중세 기사 문학은 용감한 기사들이 정의를 실현하고, 악을 물리치며, 아름다운 여인을 구출하는 이상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기사들은 용맹과 도덕성을 갖춘 영웅으로 묘사되었고, 마법과 신비로운 존재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모험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와 같은 이상적인 기사들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실제의 기사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이러한 허구적 세계관을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그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당시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신봉하던 기사 문학의 비현실성을 조롱했다.

돈키호테는 수많은 기사 문학을 탐독한 끝에 현실과 허구를 혼동하게 된다. 그는 자신을 위대한 영웅이라 믿고,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겠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모험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대부분 현실과 맞지 않으며, 때로는 터무니없는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돈키호테는 허름한 여관을 웅장한 성(城)으로 여기고, 평범한 농부 여성을 귀족 출신의 아가씨라 착각하여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기사 문학에서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서사를 과장된 형태로 패러디한 것이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세르반테스는 기사 문학이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돈키호테를 통해 허구적 세계에 집착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풍자로 끝나지 않는다. 돈키호테는 이상을 추구하며 현실과 끊임없이 맞선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실패와 조롱을 감수하며, 때로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행동은 비록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순수한 열정과 신념이 담겨 있다.  세르반테스는 기사 문학을 조롱하면서도, 동시에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지닌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3. 기사도 정신과 현실의 간극 

돈키호테는 자신이 믿는 ‘기사도 정신’을 실천하려 하지만, 현실 세계는 그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정의를 위해 싸우겠다는 굳은 다짐을 가지고 있으며, 억압받는 자들을 돕고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현실과 맞지 않으며, 오히려 의도치 않은 혼란과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예를 들어, 돈키호테는 포로로 잡힌 죄수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정의롭다고 확신하며,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면 그들 또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죄수들은 자신들을 풀어준 돈키호테를 조롱하고, 도망쳐버리며, 결국 더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그는 선의로 행동했지만, 현실은 그의 기대를 배반하고 냉정하게 돌아선다.

이러한 장면은 세르반테스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돈키호테가 꿈꾸는 중세의 기사 세계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현대적 질서와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의 신념과 행동은 더 이상 환영받지 않는다.  그는 기사도를 실천하려 했으나,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서 그의 행동은 오히려 조롱거리가 된다. 그러나 그의 모험이 전적으로 무의미하거나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현실을 바꾸는 데 성공하지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도전했다는 점이다.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해서 이상을 포기해야 하는가? 돈키호테는 실패했지만, 그는 적어도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사회적 규범과 질서에 반하는 도전을 목격할 수 있다. 돈키호테처럼 기존 사회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비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주변으로부터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도전이 때로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사회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가정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몇몇 선구적인 여성 운동가들이 기존의 사회 질서에 반대하며 평등을 외쳤다. 당시에는 그들의 주장과 행동이 비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조롱받았지만, 결국 그들의 신념과 도전은 현대 사회의 평등권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4. 산초 판사: 현실주의자의 역할과 변모 

돈키호테의 충직한 종자 산초 판사는 단순한 하인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현실주의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돈키호테와 달리 현실을 직시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처음에는 주인의 행동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돈키호테가 기사도 정신을 실천하겠다며 말도 안 되는 모험을 떠날 때, 산초 판사는 이를 말리거나 조롱하면서도 끝내 동행하게 된다. 그는 돈키호테처럼 허황된 이상을 좇기보다는 현실적인 보상을 기대하며 그를 따르는 실리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돈키호테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그의 사고방식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돈키호테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어리둥절해하며 따라가지만, 점점 그의 이상주의적 사고에 영향을 받게 된다. 현실을 중시하던 산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돈키호테의 세계관을 이해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 역시 허구 속에서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까지 한다. 작품 후반부에 이르면, 산초는 돈키호테처럼 환상을 믿으며, 현실과 이상이 혼재된 상태에 놓인다. 이와 같은 변화는 ‘현실주의자’로만 보였던 산초가 결국 돈키호테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내면적으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산초 판사는 단순히 돈키호테를 돕는 조력자 역할을 넘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캐릭터다. 

이러한 산초 판사의 변화는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이상과 현실은 결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돈키호테가 철저한 이상주의자라면, 산초 판사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시작하지만, 결국 그 둘은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며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은 구도는 현실과 이상이 항상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시사한다. .

 

5. 『돈키호테』가 현대 사회에 주는 의미 

『돈키호테』는 17세기에 쓰였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우리는 각자 돈키호테처럼 꿈을 꾸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할 때가 많다. 사회는 이상주의자를 비현실적이라 비웃고, 현실주의를 강요한다. 그러나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스타트업 창업자, 예술가, 사회 운동가 등도 돈키호테처럼 세상의 흐름에 맞서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때로는 실패하고 조롱받지만, 결국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대한 괴물로 착각하고 덤벼든 것처럼, 현대인들도 거대한 사회적 장벽을 향해 도전한다.

또한,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과정에서도 『돈키호테』는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 속에서 살지만, 때로는 자기만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돈키호테는 현실을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에 실패했지만, 그의 도전정신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

결국, 『돈키호테』는 단순한 풍자 소설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 실패와 도전,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우리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할 때,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