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한 모험 소설이 아니다. 소설은 소인국, 거인국, 하늘을 나는 섬, 말의 나라 등을 배경으로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이 글에서는 작품 속 각 여행지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다양한 측면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1. 소인국 ‘릴리풋’과 권력의 허상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첫 번째 여행지는 소인국 ‘릴리풋(Lilliput)’이다. 걸리버가 이 거대한 몸으로 소인들 사이에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단순히 크기의 차이를 넘어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허영심을 비판한다. 릴리풋의 왕과 신하들은 걸리버의 도움을 받아 적국인 블레푸스쿠(Blefuscu)와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한 작은 싸움과 음모뿐이다.
릴리풋에서의 정치적 갈등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사소하다. 예를 들어, 삶은 달걀을 깨는 방식(큰쪽 vs 작은쪽)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은 현실 사회에서의 이념 갈등과 종교적 대립을 풍자한다. 스위프트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인간 사회의 권력 다툼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보여준다. 실제 정치에서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들이 오가지만, 그 이면에는 사소한 이익과 권력욕이 숨어 있다는 점을 풍자하고 있다.
또한, 릴리풋의 관리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줄타기 곡예를 하는 장면은 공직자 선발 과정의 부패와 무능함을 꼬집는다. 이는 18세기 영국 사회뿐 아니라 현대의 정치적 현실에서도 유효한 메시지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보다는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을 통해 승진하거나 지위를 얻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에서 릴리풋은 작지만 거대한 인간의 허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2. 거인국 ‘브로브딩낵’과 인간의 추악함
『걸리버 여행기』의 두 번째 여행지인 거인국 ‘브로브딩낵(Brobdingnag)’에서는 소인국과는 반대로 걸리버가 아주 작은 존재가 된다. 거대한 거인들 사이에서 걸리버는 인간의 작고 초라한 본성을 새롭게 깨닫는다. 브로브딩낵의 왕은 걸리버가 속한 영국 사회의 법과 정치 체계에 대해 질문하며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걸리버가 자랑스럽게 설명한 영국의 법률 체계와 정치 시스템은 왕의 눈에 오히려 부패하고 위선적인 체제로 비춰진다.
브로브딩낵 왕은 인간 사회의 전쟁과 탐욕, 불평등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인간을 "작고 해로운 벌레 같은 존재"라고 평가하며, 걸리버가 속한 문명이 오히려 미개하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스위프트는 거인의 눈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인간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화와 문명이 사실은 얼마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지 보여준다.
특히, 거인국에서는 인간의 신체가 확대되어 보이면서 걸리버가 혐오감을 느끼는 장면들이 있다. 주름, 피부의 결점, 더러움 등이 모두 크게 보이면서 인간의 외형뿐 아니라 내면의 추악함까지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인간이 작은 결점도 숨기려 하고,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려 하지만, 실제로는 불완전하고 더러운 존재임을 비판한다.
3.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와 학문적 오만
세 번째 여행지인 ‘라퓨타(Laputa)’는 하늘을 떠다니는 섬으로, 이곳 사람들은 과학과 수학에 집착하는 지식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는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 실험에 몰두할 뿐, 실질적인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들은 오이에서 햇빛을 추출하려 하거나, 거위의 배설물로 벽돌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
라퓨타 사람들은 현실을 전혀 보지 못하며, 항상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래서 그들 곁에는 항상 "두들기는 사람"(Flapper)이 붙어 있다. 이 사람은 막대기를 이용해 라퓨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두드려 현실 세계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는 지식과 학문의 오만함을 비판하며, 인간이 현실을 외면하고 지식만을 추구할 때 얼마나 어리석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스위프트는 라퓨타를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 삶의 괴리를 풍자한다. 그는 합리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지식이 인간의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기술 발전과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4. 말의 나라 ‘후이넘’과 인간의 야만성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여행지는 ‘후이넘(Houyhnhnm)’의 나라다. 이곳은 이성적이고 고귀한 말(馬)들인 후이넘이 지배하는 나라로, 그들의 하인으로 ‘야후(Yahoo)’라는 원시적 인간들이 존재한다. 후이넘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폭력과 거짓말을 모르는 평화로운 사회를 이룬다. 반면, 야후들은 탐욕과 폭력, 음란함을 가진 인간의 본성을 상징한다.
걸리버는 처음에는 인간인 야후를 혐오하지만, 점점 자신의 모습에서 야후의 본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후이넘들이 인간을 경멸하는 이유를 깨닫고, 스스로도 인간이라는 사실에 혐오감을 느낀다. 이는 스위프트가 인간의 본질을 냉혹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인간은 겉으로는 문명화된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여전히 야만적 본능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후이넘의 나라에서 걸리버는 인간 사회의 위선과 부조리를 더욱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결국 그는 인간 세상으로 돌아간 후에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환멸과 회의감을 상징한다.
5. 『걸리버 여행기』가 던지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히 환상적인 모험을 다룬 여행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기발하고 독특한 네 개의 세계를 통해 인간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동시에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소설 속 걸리버의 여행은 현실을 벗어난 모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민낯을 거울처럼 비추는 여정에 가깝다.
먼저, 소인국 ‘릴리풋’에서는 권력과 허영심이 인간 사회에서 얼마나 흔하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이 모습은 현실 세계의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을 풍자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정당 간의 정쟁, 기업 내 권력 다툼, 심지어는 가족 내에서도 사소한 일로 권위를 내세우려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인간은 타인보다 우위에 서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욕망이 때로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점을 릴리풋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인국 ‘브로브딩낵’에서는 인간의 초라함과 불완전함이 두드러진다. 인간이 자부심을 갖는 문명과 문화가 사실은 탐욕과 위선, 부패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인간이 겉으로는 문명화된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고, 약자를 짓밟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에서는 지식과 학문에 대한 오만을 비판한다. 라퓨타 사람들은 항상 하늘을 바라보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공상에 빠져 있다. 그들은 수학과 과학에만 몰두하며, 정작 실생활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연구와 실험을 반복한다. 스위프트는 이를 통해 인간이 지식과 기술의 발전을 맹목적으로 추구할 때, 오히려 현실 감각을 잃고 어리석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기술 발전과 혁신을 외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행복과 진정한 삶의 가치가 소외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말의 나라 ‘후이넘’에서는 인간의 야만적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곳의 주인공인 이성적이고 고귀한 말들 후이넘은 인간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반면, 인간을 닮은 야만적인 존재인 ‘야후’들은 탐욕과 폭력, 음란함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걸리버는 후이넘의 눈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추악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를 문명화된 존재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야만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작가는 단순히 사회를 비판하고 인간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들에게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걸리버 여행기』는 상상력과 유머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허영심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해야 할 가치와 도덕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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