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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탐구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by filebox77 2025. 3. 6.

1. 내면의 고독 –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학적 정체성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는 20세기 포르투갈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문학을 통해 내면의 불안을 표현했다. 『불안의 책』(Livro do Desassossego)은 페소아가 남긴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작품으로, 현대인의 불안과 정체성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이 작품은 특정한 줄거리를 가지지 않으며, 일기 형식으로 서술된 단편적인 사유와 감정의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페소아는 자신의 글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고독과 불안이라는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는 단순한 철학적 사유를 넘어서, 문학을 통해 내면의 불안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특히 그는 여러 개의 필명(heteronyms)을 사용하며 각기 다른 인격과 세계관을 가진 작가들을 창조했다. 이는 그의 문학적 실험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특징으로, 『불안의 책』에서도 이러한 다층적인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 책에서 페소아는 ‘베르나르두 소아르스(Bernardo Soares)’라는 또 다른 자아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아르스는 평범한 사무원으로 등장하지만, 그의 내면은 끊임없이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불안과 존재론적 회의 속에서 살아간다. 그는 일상의 단순한 풍경 속에서도 깊은 성찰을 이어가며,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페소아는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불안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2. 불안과 존재론적 회의 – 『불안의 책』이 담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

『불안의 책』에서 페소아는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과 불안에 대해 깊이 탐구한다. 그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삶의 본질을 분석한다. 이 작품은 니힐리즘과 실존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키르케고르와 사르트르의 철학과도 공명하는 부분이 많다.

페소아는 삶이란 하나의 연극이며, 우리는 모두 자신이 설정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단지 사회적 요구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실존적인 자아는 그 배후에서 끊임없이 불안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르트르의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아가 형성된다"는 개념과 유사한데, 페소아는 이를 한층 더 감성적으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그는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라는 문장을 통해,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변화하려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아를 찾기 위해 방황하고, 소셜미디어나 대인관계를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재정의하려 한다. 이러한 점에서 『불안의 책』은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페소아는 삶을 "끝없는 해석의 연속"이라고 보았으며,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려 할수록 더욱 혼란에 빠진다고 말한다. 그는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또 다른 불안을 낳는다는 역설을 강조하며, 인간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시사한다. 이처럼 『불안의 책』은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걸작이라 할 수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3. 문체와 서술 방식 – 감성적이고 파편적인 사유의 기록

페소아의 문체는 매우 독특하다. 그는 정형화된 서술 방식을 따르지 않으며, 단편적이고 조각난 문장들로 이루어진 글을 통해 내면의 흐름을 그대로 전달한다. 이는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과 유사하지만, 페소아는 보다 철학적이고 내성적인 스타일을 유지한다.

그의 글은 마치 시(詩)와도 같은 서정성을 지니며, 때로는 한 문장만으로도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예를 들어, 그는 "나는 나 자신 속에 갇혀 있고, 그 안에서 도망칠 방법을 모른다."라고 말하며 인간 내면의 고독을 표현한다. 이처럼 『불안의 책』은 감성적인 언어와 철학적인 통찰이 결합된 작품으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또한 페소아는 반복적인 주제를 변주하며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는 같은 주제(예: 불안, 정체성, 꿈)를 여러 번 다루지만, 매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마치 음악에서 하나의 주제를 변주하며 연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를 통해 그는 독자에게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그의 글은 또한 ‘비논리적 논리’라는 특징을 갖는다. 즉, 문맥상 연결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감정과 철학적 깊이를 통해 전체적으로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현대 문학에서도 독창적인 스타일로 평가받으며, 『불안의 책』을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만들어 준다.

 

4. 현대 사회에서 『불안의 책』이 가지는 의미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경쟁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비교하고 현실의 자신을 부정하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불안의 책』이 다루는 주제는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욱 공감되는 면이 많다.

페소아는 "진정한 자유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곧 "그 이해조차도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는 현대인들이 자아 탐색을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특히,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현대 사회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SNS와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여러 개의 ‘온라인 자아’를 갖게 되었고, 가상 세계에서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다른 삶을 살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불안의 책』이 던지는 질문은 더욱 의미가 깊다.

결국, 『불안의 책』은 단순한 철학적 사유를 넘어, 현대인의 내면을 꿰뚫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불안과 마주하고,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더욱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페소아가 남긴 글은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깊숙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철학적 거울과도 같다.